영일동맹과 영국-프랑스협약 등을 체결하여 외교정책의 전환을 꾀했다.
‘밸푸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 출생-사망 : 1848.7.25 ~ 1930.3.19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정치
명문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후 1874년부터 보수당소속 의회의원이 되었으며,
베를린회의 때는 백부(伯父)인 솔즈베리의 비서로 참석하였다.
1886년부터 스코틀랜드담당장관 ·아일랜드담당장관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후,
1902년 총리에 취임하였으며, 영일동맹과 영국-프랑스협약 등을 체결하여 외교정책의 전환을 꾀하였다.
1905년 사임하고, 수년간 자유통일당의 총재로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5년 해군장관, 1916년 외무장관이 되었다.
1917년 유대인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밸푸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하였는데,
이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전후에는 베르사유조약과 워싱턴군축회의의 영국대표로 활약하였으며, 1922년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24년 추밀원(樞密院) 의장이 되었다.
1926년 영국 본국과 자치령과의 관계 정립을 위한 협상을 지도하여 ‘밸푸어보고서(Balfour Report)’를 작성하였으며,
그 내용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헌장(Statute of Westminster)으로 입법화되었다.
밸푸어[Balfour] _ 영국의 정치가.
영일동맹과 영국-프랑스협약 등을 체결하여 외교정책의 전환을 꾀했다.
‘밸푸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 출생-사망 : 1848.7.25 ~ 1930.3.19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정치
명문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후 1874년부터 보수당소속 의회의원이 되었으며,
베를린회의 때는 백부(伯父)인 솔즈베리의 비서로 참석하였다.
1886년부터 스코틀랜드담당장관 ·아일랜드담당장관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후,
1902년 총리에 취임하였으며, 영일동맹과 영국-프랑스협약 등을 체결하여 외교정책의 전환을 꾀하였다.
1905년 사임하고, 수년간 자유통일당의 총재로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5년 해군장관, 1916년 외무장관이 되었다.
1917년 유대인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밸푸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하였는데,
이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전후에는 베르사유조약과 워싱턴군축회의의 영국대표로 활약하였으며, 1922년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24년 추밀원(樞密院) 의장이 되었다.
1926년 영국 본국과 자치령과의 관계 정립을 위한 협상을 지도하여 ‘밸푸어보고서(Balfour Report)’를 작성하였으며,
그 내용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헌장(Statute of Westminster)으로 입법화되었다.